Photo: Josh Trujillo / Seattle Post-Intelligencer
Photo: David Newman
Letter Cloud at the Wing Luke Museum.

아시아 아메리칸 문화 유산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은 도시가 세워질 무렵부터 시애틀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경제적 기회를 찾아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인 개척자는 1860년대 철도, 광산, 통조림 공장, 제재소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중국인 교포 3세는 해안가에 정착한 후 동쪽 블록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경제 침체기를 겪으며 중국인 폭행 및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정도로 가혹한 시기도 있었지만, 중국인은 성장하는 도시의 중추로 남았습니다. 1899년 시애틀 대화재 이후 차이나타운 중심부는 5번가 S 동쪽 아파트와 지역사회 연합 건물로 옮겨갔습니다.

아시아 아메리칸 개척자와 이주자는 현재 차이나타운 국제지구(Chinatown-International District)로 알려진 다민족 지구를 형성하였고, 그 밖에도 농장이나 벌목장, 그 외 퓨젯 만 전역에 걸쳐 두루 퍼졌습니다. 1942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날인한 행정명령 9066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서부 해안 지대에 있던 일본계 미국인이 포로 수용소로 강제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책의 영향으로 도시 인근지역과 지방 역시 변모하였습니다.

일본인 개척자는 1880년대에 이곳으로 이주해 농부나 상인으로 일을 했습니다. 독신 남성 혼자 워싱턴 지역(Washington Territory)으로 온 후 나중에 “신부 사진”을 보고 고른 신부를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주민 2세대에게는 소유권이 넘어가거나 다른 창의적인 방법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도 있었지만, 차별적인 토지 소유법 때문에 일본인 미국 이주자 1세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니혼마치(Nihonmachi) 혹은 재팬타운(Japantown)이라 하여 도시 거주민이나 시골 지역 일본인 가족에게 음식물을 공급하던 독자적인 구역이 차이나타운 북쪽 S 메인가(Main Street)와 6번가 S를 중심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792년 밴쿠버 선장(Captain Vancouver)과 함께 하와이 원주민이 퓨젯 만으로 들어온 이후, 태평양 섬주민은 태평양 북서부 지방과 역사를 함께 했습니다. 20세기 초, 필리핀이 미국 영지로 들어간 후, 많은 필리핀인이 교육과 고용의 기회를 찾아 시애틀로 향했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시애틀은 한국인, 베트남인, 캄보디아인, 라오스인, 타이인, 몽족, 남아시아 이주민의 터전이었으며, 환태평양 문화가 서로 융합되어 독특한 색을 발하는 이국적인 지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건축물, 정원 디자인, 지역 음식, 예술 등 시애틀 곳곳에서 아시아 문화 전통이 남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차이나타운 국제지구가 시애틀 아시아 아메리칸 지역사회의 심장부라면, 화이트 센터(White Center), 벨뷰(Bellevue), 페더럴 웨이(Federal Way), 쇼어라인(Shoreline) 같은 지역사회는 활기 넘치는 다민족 레스토랑과 상점으로 다양함을 뽐냅니다. 수많은 축제와 행사로 전통을 지키고 있으며, 다양한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시애틀 지역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시애틀의 풍부한 문화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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